문화
중앙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중앙지인 제작
김민수 ms@wtimes.kr   |   2018. 11. 13 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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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1000년을 준비하는 중앙대, 개교 100주년 기념 중앙지인 제작

 

(Korean)

 

박희웅 교수, 이창수 숙련기술자가 ‘중앙지인’을 박상규 100주년 기념단장에게 기증하고있다.


 

지난 11월 9일, 박희웅 교수(중앙대)와 이창수 숙련기술자가 100주년 기념관에서 중앙대학교 도장 ‘중앙지인’을 기부했다. 도장을 찍는 인면은 중앙대의 공문서 본문에 인쇄되는 UI (University Icon) 형태다. 중앙대 UI는 기관의 이름을 밝히는 ‘청인’ 기능을 했으나 지금까지 원본이 없는 양식으로만 존재했다. 100주년기념사업단 윤형원 팀장은 “중앙지인은 다른 대학이 부러워할 물건이다”며 “역사적인 이벤트 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본 기자는 관인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조사한 결과 흥미로운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관인(官印)제도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백성을 다스림에 왕의 의사표시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어진다는 의견과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환웅이 아버지 환인으로부터 받은 천부3(天符三印)이 우리나라 역사상 나타난 최초의 관인(국새)으로 봐야 한다는 2가지 주장이 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이러한 학계의 의견 차이를 감안해도 다음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예고(禮考) 새인조(璽印條)에 부여(夫餘) 예왕((穢王)이 예왕지인(穢王之印)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우리나라 관인(국새)의 사용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어진다.

 

특히, 국가 관인은 국권의 상징으로써, 국가 문서에 사용되는 관인(국새)은 고려조선시대에는 국인(國印), 새보(璽寶), 어보(御寶), 대보(大寶)라 하여 왕의 인장이 국새로 간주되었고 국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했다. 사대교린의 외교문서와 왕명으로 행해지는 국내문서, 왕위 계승 시 나라를 넘겨준다는 징표로 전하여 주었다. 왕의 각종 행차 시 위엄이 있고 엄숙함을 과시하기 위하여 행렬의 앞에서 봉송되기도 하였다. 1894년 갑오경장 이전까지의 국인은 대부분 중국 역대왕조의 황제들에 의해 사여(賜與)되어 들어왔으며, 기타의 어보들은 국내에서 제작하여 사용되었다.

 

 


현대 국새 관인의 예 (출처=행정안전부)

 


 

 

또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진 우리의 자랑스러운 금속활자 문화의 시원을 인()의 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가능성에서 우리의 관인문화를 더욱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활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인쇄(印刷)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도장 인()자에 인쇄할 쇄()자이다 즉 도장을 놓고 그 위에 솔로 문지르는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종이의 발명이후 급속적인 인쇄문화의 발전으로 도장이라는 뜻을 대신하여 활자의 개념이 생성되어졌고 이후 인쇄(印刷)의 뜻으로 쓰여 졌을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우리의 관인은 삼국시대에도 주조(鑄造)로 이루어짐을 문헌을 통하여 알 수 있고 그러한 문화적인 토대는 이후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로 이어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관인은 국가기관과 그 관원이 공적으로 사용하는 인장으로서, 국가기관에서 발행하는 공식문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이를 증명하는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실질적인 국정운영의 과정이 기록으로 공식화되는 것이 관문서이고, 이 관문서에 효력을 부여하는 것이 관인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는 관인을 중요한 국가 통치수단의 하나로 여겨 법으로 엄격히 관리운영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2018년 현재에도 맥을 이어 국새규정(대통령령 제28211)에 근거하여 대한민국 제5대 국새가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관인의 의미에 무게를 두고 바라보면, 우리에게는 이처럼 무구한 역사 속에 인(도장)이라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최근 편리성 때문에 도장대신 사인(Sign)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인이 도장의 자리를 밀어내고 그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그리 쉽게 그렇다할 수 없을 것이다

 

 

 


중앙지인의 제작 및 기획을 추진한 이창수 숙련기술자와 박희웅 교수

 


 

글로벌 시대에 대학교는 한 나라 안의 국가라고 상징될 만큼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대학교도 우리의 전통성을 올바르게 지키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대학교는 없다. 단지 대학문화라는 이벤트 정도로 그 대학교의 이미지를 좀 더 좋게, 좀 더 친화적으로 만들려는 노력들만 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학교 내면의 뿌리와 정통성, 학교의 철학과 사상을 상징화하고 부각시키는 행위는 소홀히 하는 듯 하여 안타깝다. 전통은 역사의식이며 역사의식은 과거의 과거성 뿐만 아니라 그 현재 및 미래에 대한 의식을 뜻한다.’T.S 엘리어트의 말처럼 전통은 과거에로의 무조건적인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물결을 헤치고 나갈 운동의 힘으로 생각되어져야 한다. 이번에 제작된 중앙지인은 중앙대학교가 올바른 전통을 세우고 미래의 1000년을 준비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기증인

이창수- ‘중앙지인제작

: 대한민국 제4대 국새제작단 실행위원 국새 실물 제작

: ()대한민국 숙련기술자(노동부)

: ()귀금속 가공기능장(노동부)

 

박희웅- ‘중앙지인기획

: 대한민국 제4대 국새제작단 실행위원 - 행정총괄

: ()중앙대학교 평생교육원(서울) 연극학 공연제작 주임교수

: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철학과 박사(수료)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예술경영 석사 

 

 

 

김민수 기자

ms@w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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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중앙대학교, 박희웅, 이창수, 숙련기술자, 100주년, 기념, 중앙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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